Monday, March 20, 2017

어린 왕자 (Korean)

서문

레옹 베르트에게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데 대해서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청한다. 나는 용서받을 만한 그럴 듯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어른이 이 세상에서 나하고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어른은 무엇이든지 알아들을 수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책까지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유는, 이 어른이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배를 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어른은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에 있다. 이 모든 이유가 그래도 부족하다면, 이 책을 이 어른이 전에 어린이로 있던 시절에 바치고자 한다. 어른은 누구나 다 어린 시절을 거쳐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바치는 글'을 고쳐 쓴다.

어린 시절의 레옹 베르트에게

1

내가 여섯 살 적에, 한번은 <<체험한 이야기>>라고 하는, 원시림에 관한 책에서 훌륭한 그림을 하나 본적이 있다.
그것은 보아라는 구렁이가 맹수를 집어 삼키는 그림이었는데, 그것을 옮겨 그리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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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책에 그런 말이 있었다. '보아구렁이는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집어삼킨다. 그리고 나서는 꼼짝도 못하고 먹이가 소화되는 여섯 달 동안은 잠을 잔다'고 하는.
그래서 나는 밀림에서 일어나는 일을 여러 가지로 곰곰이 생각해 보고서, 색연필을 가지고 첫 번째 그림을 그려 보았다. 나의 첫 번째 그림, 그것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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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이며 내 그림이 무서우냐고 물어보았다.
어른들은, '모자가 왜 무섭겠느냐'고 대답했다.
내 그림은 모자가 아니고, 보아구렁이가 코끼리를 삭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알아 볼 수 있도록 보아 구렁이의 속을 그렸다.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을 들려주어야 한다. 내 두 번째 그림은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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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나보고 속이 보이고 안 보이고 하는 보아구렁이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산수, 문법에 취미를 붙이는 것이 좋을 거라고들 했다.
그리하여 나는 여섯 살 적에 훌륭한 화가로서의 장래를 버리게 되었다. 나는 첫 번째 그림과 두 번째 그림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낙심을 하였다. 어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언제나 그 어른들에게 설명을 해 준다는 것은 어린이들로서는 힘이 드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직업을 골라잡을 수밖에 없어, 비행기 조종하는 것을 배웠다. 나는 전 세계를 닥치는 대로 날아다녔다. 지리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한 번 척 보아도 중국과 애리조나를 구별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은 밤에 길을 잘못 들었을 적에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수많은, 성실한 사람들과 많은 접촉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어른들 집에서 살며 아주 가까이서 그들을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더 낫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좀 총명해 보이는 어른을 만나면 늘 간직하고 있던 내 첫 번째 그림으로 시험을 해 보았다. 정말 무엇을 좀 알아보나 하고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언제나 내게 모자라는 것이었다. 그럴 때에는 보아구렁이니, 원시림이나, 별이니 하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그 어른이 알아들을 수 있게 브리지니, 골프니, 정치니, 넥타이니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그 어른은 나같이 똑똑한 사람을 알 게 된 것을 몹시 좋아했다. 

2

그리해서 나는 서로 가슴을 열어 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도 없이 혼자서 살아 왔다. 이것은 6년 전 사하라 사막에서 고장을 일으킨 때까지의 일이다. 비행기 엔진에 무엇인가 결딴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정비사도 승객도 없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수선을 나 혼자서 해치워 보려고 마음 먹었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생사의 문제였다. 겨우 여드레 동안 마실 물이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첫날 저녁, 나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만 리나 떨어진 모래밭에서 잠이 들게 되었다. 그것은 넓은 바다 한 가운데서 뗏목을 타고 있는 파선객보다도 훨씬 더 외로운 신세였다. 그러니 해가 뜰 무렵, 이상한 낮은 목소리를 듣고 잠이 깨었을 적에 내가 얼마나 놀랐겠느냔 말이다. 그 목소리는 이런 말이었다.
"아저씨, 나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응?"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화닥닥 일어섰다. 그리고 눈을 비비고 자세히 쳐다보았다. 나를 점잖게 바라보고 있는 어린 친구가 보였다. 여기 있는 그림이 내가 나중에 그린 그의 가장 근사한 초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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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 그림은 모델보다는 훨씬 덜 아름답다. 그러나 이것은 내 탓이 아니다. 여섯 살 적에 이미 어른들 때문에 화가로서의 장래에 낙심하여, 속이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는 보아구렁이밖에 그림이라고는 전혀 배운 일이 없었으니까.
그래 나는 눈이 휘둥그래저 가지고 그 허깨비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사람 사는 지방에서 수만 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었다. 그런데 이 어린 친구가 길을 잘못 든 것 같지는 않았다. 몹시 고달프다든가, 시장하다든가, 목이 마르다든가, 무서워서 벌벌 떤다든가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 사는 곳에서 수만 리 떨어진 사막 가운데서 길을 잃은 아이다운 빛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이윽고 나는 말문이 열려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넌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그 애는 아주 무슨 중대한 일이기나 한 것처럼 가만히 같은 말을 되뇌었다.
"아저씨,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너무도 이상한 일을 당했을 때는 그것을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만 리 떨어지고 죽을 위험을 당하고 있는 자리에서, 그것이 도무지 이치에 닿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은 되었으나, 결국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과 만년필을 꺼냈다.
그러나 나는 문득 지리니, 역사니, 산수니, 문법이니 하는 것을 배운 일이 생각나서 약간 성을 내며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아. 나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05.gif
나는 양을 그려 본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릴 줄 아는 두가지 그림 중에서 하나를 그려 보였다. 그것은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보아구렁이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 어린 친구는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언제 보아구렁이 뱃속에 코끼리 들어 있는 그림 그려 달랬어? 보아구렁이는 아주 위험한 거야. 그리고 코끼리는 아주 거추장스러고, 우리집은 아주 조그마해. 난 꼭 양이 있어야겠어.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06.gif
그래서 나는 양을 그렸다. 그랬더니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 한다는 소리가,
"틀렸어! 이건 벌써 병이 잔뜩 들었는데. 다른 걸 하나 그려 줘."
또 그렸다.
"이거봐, 아저씨. 그건 양이 아니고 염소인데. 뿔이 있으니 말이야." 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07.gif
그래서 또 다시 그렸다. 그러나 그것도 먼젓번 것들 모양으로 퇴박을 맞았다. "이건 너무 늙었더. 난 오래 살 수 있는 양이 갖고 싶어."
엔진을 뜯기 시작할 일이 급하기에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어, 다시 그림을 아무렇게나 끄적거려 놓고 한마디 툭 했다."이건 상자다. 네가 가지고 싶어하는 양은 이 속에 있다." 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08.gif
그러자 천만 뜻밖에도 어린 재판관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게 바로 내가 갖고 싶어한 그림이야. 이 양은 풀을 많이 줘야 할까, 아저씨?"
"왜?"
"우리집은 아주 조그마하니까 말이야."
"이거면 넉넉해, 내가 준 양은 아주 조그마한 거니까."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뭐…… 야! 양이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이 어린 왕자를 알 게 된 것이다.

3

그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기에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어린 왕자는 나에게는 여러 가지를 물어 보면서 내가 묻는 말은 조금도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09.gif
어쩌다 우연히 하는 말로 차츰차츰 모든 것을 알 게 되었다. 가령, 그가 내 비행기를 처음 보았을 적에 ― 내 비행기는 그리지 않으련다. 그건 내가 그리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그림이니까 ―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물건은 뭐야?"
"이것은 물건이 아니라 날아다니는 거야. 비행기야, 내 비행기."
나는 어린 왕자에게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랬더니 어린 왕자는 소리쳤다.
"뭐! 아저씨가 하늘에서 떨어졌어?"
"응."
하고 나는 겸손히 대답했다.
"야! 거 참 재미있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아주 유쾌하게 깔깔대며 웃었다. 그것이 몹시도 내 비위를 건드렸다. 나는 사람들이 내 불행을 비웃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어린 왕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아저씨도 하늘에서 왔군. 아저씬 어느 별에서 왔어?"
나는 신비로운 그의 존재를 알아내는 데에 어떤 서광이 비침을 깨닫고 별안간 이렇게 물었다. 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09_1.gif
"그럼 너는 다른 별에서 왔니?"
그러나 그는 내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비행기를 들여다보면서 머리를 까딱까딱했다.
"하긴 아저씨가 그걸 타고 그리 멀리서 오진 못했겠군."
그리고 그는 오래오래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내가 그려 준 양을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그 보물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른 별들에 대해서 약간 내비치기만 한 이 속내 이야기가 얼마나 내 마음에 걸렸겠는가? 그래서 나는 좀더 알아보려고 무척 애를 썼다.
"얘야, 너 어디서 왔니? 네 집은 어디냐? 내 양을 어디로 가져 가려고 그러니?"
그는 묵묵히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런 대답을 했다.
"아저씨가 준 상자 말이야. 그게 밤에는 양의 집이 될 테니까 잘 됐다."
"그렇고 말고. 그리고 네가 얌전하게 굴면 낮 동안에 양을 매어둘 고삐도 줄테다. 말뚝도 주고."
이 제안이 어린 왕자의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양을 매둬? 참 망측한 생각인데!"
"하지만 매두지 않으면 아무데로나 가버려 길을 잃고 할 게 아니냐."
그랬더니 이 친구는 다시 한 번 깔깔 웃었다.
"아니, 가긴 어디로 가?"
"어디로든지, 곧장 앞으로……."
그랬더니 어린 왕자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
"괜찮아, 내 집은 하도 작으니까!"
그리고 약간 서글픈 생각이 들었는지 덧붙여 말했다.
"앞으로 곧장 간대도 별로 멀리 갈 수가 없어……."

4

그리하여 나는 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것을 알 게 되었다.
그것은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이 집 한 채보다 좀 클까 말까 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구, 목성, 화성, 금성같이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큰 떠돌이별들 밖에도 다른 떠돌이별이 여러 백 개가 있고, 어떤 것은 너무 작아서 망원경으로도 보고기 무척 힘들지경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천문가가 그런 별을 하나 발견하면 이름 대신 번호를 매겨 준다. 가령 '소혹성 제 325호'라고. 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10.gif

나는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이 소혹성 B612호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 이 소혹성은 1909년에 터키 천문학자가 망원경으로 한번 보았을 뿐이다. 이 천문학자는 그때 국제천문학회에서 자기의 발견에 대한 굉장한 증명을 했었다. 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12.gif

그러나 그의 옷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른들은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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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12호 소혹성의 명예를 위해서는 다행한 일로, 터키의 어느 독재자가 자기 국민에게 양복 입기를 명하고, 거역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이 천문학자는 1920년에 멋있는 양복을 입고 증명을 다시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모두들 그의 말을 믿었다.
B612호 소혹성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하고 그 호수까지 일러준 것은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어른들은 '그 친구의 목소리가 어떠하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를 수집하느냐?' 라고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는 몇이냐? 형제는 몇이냐? 몸무게는 얼마냐? 그 친구 아버지는 얼마를 버느냐?' 하는 것이 고작 묻는 말이다.
그래야 그 친구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곱고 고운 붉은 별돌집을 보았다' 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생각해 내지 못한다. 어른들에게는 '1억 원짜리 집을 보았다' 고 해야 한다. 그래야 '야, 참 훌륭하구나!' 하고 부르짖는다.
이와 같이 '어린 왕자가 몹시 예뻤고, 잘 웃었고, 양을 가지고 싶어했고 한 것은 그가 존재하고 있는 증거가 된다. 누가 양을 가지고 싶어하면 그것은 그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증거가 된다. 누가 양을 가지고 싶어하면 그것은 그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증거가 된다' 라고 어른들에게 말한다면, 그들은 어깨를 들먹이며 우리를 아이로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떠나온 별이 B612호 소혹성이다' 라고 하면 그들은 우리말을 알아들을 것이고, 또 여러 가지 질문으로 귀찮게 굴지도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그렇게 되어 먹었다. 그것을 가지고 어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못 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에 대해서 아주 너그러워야 한다.
그러나, 인생을 이해한 우리는 물론 소혹성의 호수 같은 건 대수럽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옛날 선녀 이야기 하듯이 시작하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옛날에 저보다 좀 더 클까 말까한 별에 어린 왕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왕자는 친구가 그리웠습니다' 라고. 인생을 이해하는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훨씬 더 진실한 느낌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아무렇게나 읽어치우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이 추억을 이야기하자니 수많은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내 친구가 양을 가지고 떠나간 지도 벌써 여섯 해가 된다. 지금 여기에다 그의 모습을 그려 보려는 것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니까. 누구나 다 친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도 숫자밖에는 흥미가 없는 어른처럼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림 물감 상자와 연필들을 산 것도 이 때문이다.
여섯 살 적에 속이 들여다 보이고 안 보이고 하는 보아구렁이밖에 그림이라고는 그려 본 일이 없는 내가, 새삼 이 나이에 그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드는 노릇이다. 물론 할 수 있는 대로 비슷한 초상을 그려 보기로 하겠다. 그러나 꼭 성공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 그림은 괜찮아 보이는데 저 그림은 그렇지가 않다. 키도 조금씩 틀리다. 이 그림은 어린 왕자가 너무 크고, 저 그림은 너무 작다. 또 옷빛깔에 대해서도 망설여진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그럭저럭 더듬거려 그려 본다. 끝에 가서 나는 더 중요한 어떤 부분을 잘못 그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잘못뿐만은 아닐 것이다. 내 친구는 도무지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아마 나도 자기 같은 줄로만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불행하게도 상자 속에 들은 양을 꿰뚫어 보지는 못한다. 아마 나도 좀 어른들처럼 생겨 먹은 모양이다. 아마 이젠 늙었는가 보다.

5

나는 별이니, 출발이니, 여행이니 하는 데 대해서 매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건 아주 천천히, 무엇을 곰곰이 생각하는 중에 우연히 알 게 되는 것이었다. 사흘째 되던 날, 바오밥 ―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그 줄기의 둘레가 20미터를 넘는 나무 ― 나무의 비극을 알 게 된 것도 이런 식이었다.
이번에도 양의 덕택이었다. 어린 왕자는 무슨 중대한 의문이나 생긴 듯이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 다는 게 참말이야?"
"응, 참말이다."
"야! 참 좋다."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바오밥나무도 먹지?"
나는 바오밥나무는 작은 나무가 아니라 성당만큼이나 큰 나무고 그래서 그가 코끼리 한 떼를 몰고 간다 하더라도, 그 코끼리 한 떼가 바오밥나무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리라는 말을 어린 왕자에게 들려 주었다.
"그놈들을 모두 무등 태워야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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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리하게 이런 말도 했다.
"바오밥나무도 크기 전엔 조그맣게 돋아나지?"
"맞았다! 그렇지만 어째서 네 양이 작은 바오밥나무를 먹었으면 하는 거냐?"
"아이, 참!"
하고 그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서 나 혼자 이 수수께끼를 푸느라고 여간한 노력이 들지 않았다.
과연 어린 왕자의 별에도 다른 별이나 마찬가지로 좋은 풀과 나쁜 풀이 있었다. 따라서 좋은 풀의 좋은 씨와 나쁜 풀의 나쁜 씨가 있었다. 그러나 씨는 보이지 않는다. 땅 속에서 몰래 자고 있다가 그 중의 하나가 깨어날 생각이 든다. 그러면 기지개를 켜고 우선 아무 힘도 없는 그 예쁘고 조그만 싹을 해를 향해 조심조심 내민다. 무나 장미나무의 싹이라면 마음대로 자라게 내 버려 둘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풀이라면 그것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곧 뽑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어린 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바오밥나무로, 그것은 자칫 늦게 손을 대면 영 없애 버릴 수가 없게 된다. 그놈은 별 전체를 휩싸 버리고 뿌리로는 별에 구멍을 파 놓는다. 그래서 별은 너무 작은데 바보밥나무는 너무 많게 되면 별이 터지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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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그건 규율 문제야. 아침에 세수를 하고 나면 별도 세수를 꼼꼼히 해줘야 해. 장미나무와 구별할 수 있게 되면 곧 바오밥나무를 뽑아 버리도록 규칙적으로 힘써야 해. 아주 어릴 적에는 바오밥나무와 장미나무가 몹시도 비슷하니까. 그건 대단히 귀찮지만 매우 쉬운 일이기도 해."
그리고 하루는 날더러 고운 그리을 한 정성껏 그려서 우리 땅에 사는 어린이들 머릿속에 이런 사정을 꽉 박아 주도록 하라고 했다.
"그 어린이들이 어느 때고 여행을 하면 필요할 거야. 제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게 괜찮을 때도 있지만, 바오밥나무의 경우엔 큰 사고가 생겨. 난 게으름뱅이가 사는 별을 하나 아는데, 그 게으름뱅이는 작은 바오밥나무 셋을 허술히 넘겨 버렸어."
그래서 어린 왕자가 일러 주는 대로 그 별을 그렸다. 나는 윤리 선생티를 내기는 싫다. 그러나 바오밥나무의 위험이 하나도 알려져 있지 않고 또 길을 잘못 들어 어떤 소혹성에 발을 들여 놓는 사람이 크나큰 위험을 당하기에 한 번만 이 근심을 버리기로 했다.
'어린이들아, 바오밥나무를 조심하라!'
내가 이 그림을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 그린 것은, 나와 같이 오래전부터 알지 못한 채 당하게 되는 바오밥나무의 위험을 내 친구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내가 준 교훈이 그만한 값어치는 있었으니까. 그대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하리라.
'이 책에는 왜 바오밥나무만큼 굉장한 다른 그림이 없을까?'
그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그려 보았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바오밥나무를 그릴 적에는 너무나 위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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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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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린 왕자! 나는 이렇게 해서 조금씩 조금씩 네 쓸쓸한 생활을 알 게 되었다. 너는 해 지는 고요한 풍경밖에는 오랫동안 오락이라는 게 없었지. 나는 넷째 날 아침, 네가 이런 말을 했을 때에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나는 해 지는 풍경이 좋아. 우리 해 지는 걸 구경하러 가."
"하지만 기다려야 하는데."
"뭘 기다려?"
"해가 지길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처음에 너는 몹시 이상해 하는 눈치더니 나중에는 나를 보고 웃었다.
너는 이런 말을 했었다.
"난 아직도 우리집에 있는 줄 알았어."
과연 그렇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미국이 정오인 때에 프랑스에서는 해가 진다.
해 지는 것을 보려면 1분 동안에 프랑스로 갈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프랑스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조그마한 네 별에서는 의자를 몇 발자국만 뒤로 물려 놓으면 그만이었지. 그래서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해 지는 풍경을 구경할 수가 있었지.
"하루는 해가 지는 걸 마흔네 번 구경했어."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시 말을 이어,
"아저씨…… 몹시 쓸쓸할 적엔 해 지는 게 구경하고 싶어져……."
"그럼 마흔네 번 구경하던 날은 그렇게도 쓸쓸했더냐?"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7

닷새째 되던 날, 역시 양의 덕택으로 어린 왕자의 아래와 같은 생활의 비밀을 알 게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속으로 생각하였던 문제의 결과 인양,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이런 말을 물었다.
"양이 말이야, 작은 나무를 먹으면 꽃도 먹을 테지?"
"양은 닥치는 대로 뭇이든지 먹는단다."
"가시가 돋친 꽃도 먹어?"
"그럼, 가시 돋친 꽃도 먹고 말고."
"그럼 가시는 어디에 소용이 있어?"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때는 엔진에 너무 꼭 박힌 볼트를 빼내 보려고 한참 골몰한 중이었다. 기계 고장이 매우 중대한 것같이 생각이 되기 시작했고 또 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최악의 경우를 당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무척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가시는 어디에 소용이 있어?"
어린 왕자는 한 번 물어 보면 결코 그대로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나는 볼트 때문에 약이 오른 판이라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가시, 그건 아무 소용 없는 거야. 꽃이 고약해서 그런 것뿐이지!"
"그래?"
그러나 잠깐 묵묵히 있다가 그는 원망스러운 듯이 이런 말을 툭 던졌다.
"나는 아저씨 말을 믿지 않아! 꽃들은 약해. 그리고 순진해. 꽃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한 완전책을 쓰는 거야. 가시가 자기들을 보호하고 있으니까 자기들이 아주 무서운 것이기나 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거야."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요놈의 볼트가 그래도 꼼짝을 안하면 망치로 두들겨 깨 버리리라.'
어린 왕자는 다시 내 생각에 방해를 놓았다.
"아저씨는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꽃들이……."
"아니다, 아니야! 아무렇게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되는대로 대답한 거다. 나는 지금 중대한 일을 하고 있어."
그는 어이가 없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중대한 일!"
어린 왕자는, 내가 손에는 망치를 들고 손가락은 시커먼 기름투성이를 해 가지고 그에게는 추하게밖에 보이지 않는 물건 위에 몸을 굽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저씨는 어른들 모양으로 말하는군."
이 말을 듣고 나는 좀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는 사정없이 말을 이었다.
"아저씨는 모든 걸 혼동해. 모든 걸 뒤죽박죽을 만들어!"
그는 정말로 성이 잔뜩 나 있었다.
그는 샛노란 금발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어떤 별에 살고 있는 얼굴이 시뻘건 양반 하나를 알고 있어. 그는 꽃 향기를 맡아본 일도 없고, 더하기밖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어. 온종일 아저씨처럼, 나는 착실한 사람이다, 나는 착실한 사람이다, 하고 되뇌이고 있어. 그리고 그것 때문에 잔뜩 교만을 부리고 있어.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그건 버섯이야!"
"뭐라고?"
"버섯이란 말이야!"
어린 왕자는 이제는 성으로 인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18.gif
"수백만 년 전부터 꽃은 가시를 만들고 있어. 그렇지만 양들이 꽃을 먹어 왔던 것도 벌써 수백만 년째야. 그런데 어째서 꽃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가시를 만들어 내느라 고생을 하는 지 알아보려고 하는 게 중대한 일이 아니야?…… 꽃과 양의 전쟁이 큰 일이 아니야? 이게 시뻘건 뚱뚱보 양반의 더하기보다 더 중대하고 중요한 일이 아니란 거야? 그리고 말이야, 만약에 내 별 말고 다른 데는 아무데도 없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내가 하나 알고 있었는데, 어린 양이 제가 하는 일이 무언지도 모르고, 어느 날 아침 요렇게 단번에 먹어 없애 버릴 수가 있는데 그게 그리 중대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는 얼굴을 붉히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누군가 수백만 개, 수천만 개 별 중에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다면, 바로 별들만 쳐다봐도 행복한 거야. 속으로 '저기 어딘가에도 내 꽃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거든. 그렇지만 양이 그 꽃을 먹어 봐. 이건 그에게는, 별들이 모두 갑자기 빛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래, 이게 중대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해는 이미 진뒤였다.
내 손에는 연장이 쥐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망치며, 볼트며, 갈증이며, 죽음을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별, 어떤 떠돌이별, 나의 별, 즉 지구 위에는 위로를 해주어야 할 어린 왕자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품에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꽃은 위험을 당하고 있지 않아. 네 양에다가 굴레를 그려 주마. 그리고 네 꽃에는 갑옷을 그려 주고.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무척 서투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의 마음을 도로 붙잡을 수 있을런지 알 수가 없었다. 눈물의 나라란 그다지도 신비로운 것이다.

8

나는 이내 그 꽃에 대한 것을 좀더 잘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전부터, 꽃잎이 한 겹만 있는 아주 소박한 꽃들이 있었는데, 그 꽃들은 별로 자리도 차지하지 않았고 누구를 귀찮게 하는 일도 없었다.
그들은 하루 아침 풀 속에 나타났다가는 저녁에 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꽃은 어디서 불어 왔는지 모를 씨에서 어느 날 싹이 텄는데, 다른 싹과는 같지 안은 이 싹을 어린 왕자는 무척 주의해서 살펴보았다.
어린 왕자는 바오밥나무의 새로운 종류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어린 나무가 이내 자라기를 멈추고 꽃봉오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굉장한 봉오리가 맺히는 것을 본 어린 왕자는 거기에서 어떤 기적적인 것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꽃은 그 푸른 방 속에 숨어 언제까지고 아름다운 단장을 하기에만 바빴다. 그리고 빛깔을 정성껏 고르고 옷을 찬란히 입고 꽃잎을 하나씩 다듬곤 했다. 양귀비 모양으로, 꾸깃꾸깃한 채 나오기가 정말 싫었던 것이다. 꽃은 그 아름다움의 고비에 다다랐을 적에야 나타나고자 했다. 그러나 무척도 티를 부리는 꽃이었다.
그 신비로운 단장이 그러니까 며칠이고 계속됐다. 그러더니 어느 날 아침, 해가 돋을 무렵에 활짝 피어났다.
그런데 그렇게도 맺고 끊는 듯이 치장을 하고 난 꽃이건만, 하품을 하며 겨우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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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제야 겨우 잠이 깼습니다. 용서해요. 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있어여."
그때 어린 왕자는 감탄해 마지 않았다.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나는 해와 동시에 났어요."
하고 꽃은 조용히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그 꽃이 과히 겸손하지는 않다고 짐작했다. 그러나 몹시도 어린 왕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꽃이었다.
조금 있다가 꽃이 말을 이었다.
"지금이 아마 조반 시간이지요? 내 생각을 좀 해주시겠어요?"
어린 왕자는 무척 어리둥절해서 찬물 한 통을 갖다 꽃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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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 꽃은 약간 수줍은 허영심으로 이내 어린 왕자의 마음을 괴롭혔다.
가령 어느 날, 제가 가지고 있는 가시 네 개 이야기를 하며 어린 왕자에게 이런 말을 한 것 따위가 그것이다.
"호랑이들이 발톱을 내밀고 오겠다면 오라 그래요!"
"우리 별에는 호랑이가 없어요. 그리고 호랑이는 풀을 먹지 않아요!"
이렇게 어린 왕자는 대꾸를 했다.
그러니까 꽃은 상냥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풀이 아니에요."
"용서하십시오." 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21.gif
"나는 호랑이는 조금도 무섭지 않지만 바람과 마주치는 건 질색이에요. 바람을 막는 병풍은 없으세요?"
'바람 마주치는 게 질색이라...... 풀치고는 운이 좋지 못한데. 이 꽃은 까다롭기도 하군.'
하며 어린왕자는 생각했다.
"저녁에는 고깔을 씌워 주세요. 당신 집은 대단히 춥군요. 설비가 좋지 못해요. 내가 있던 곳은……."
그러나 꽃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 꽃은 씨의 형태로 온 만큼 다른 세상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속이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하다가 들킨 것이 부끄러워선지, 꽃은 잘못을 어린 왕자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두세 번 기침을 했다.
"병풍은 어쩌셨어요?"
"가지러 가던 참인데, 당신이 얘기하고 있어서……."
그러나 꽃은 그래도 어린 왕자에게 가책을 느끼게 할 양으로 기침을 더 세게 했다.
그리하여 어린 왕자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착한 뜻을 가졌으면서도 이내 그 꽃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을 심각하게 생각해서 몹시 불행하게 되었다.
하루는 어린 왕자가 내게 이런 속사정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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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이 하는 말을 듣지 말았어야 할 걸 그랬어. 꽃이 하는 말은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해. 꽃은 그냥 보고 향기를 맡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 꽃도 내 별에 향기를 떨치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즐길 수가 없었어. 그 발톱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척 약이 올랐지만, 사실은 가엾은 생각이 들었어야 했을텐데."
또 이런 속내 이야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를 못했어. 그 꽃이 하는 말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는 일을 보고 판단해야 할 걸 그랬어.그 꽃은 내게 향기를 풍겨 주고 환하게 해주고는 했어. 도망을 하지 말았어야 할 걸 그랬어. 그 오죽잖은 꾀 뒤에 애정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 꽃들은 서로 어긋나는 말을 무척 잘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너무 어려서 꽃을 사랑할 줄을 몰랐어!"

9

나는 어린 왕자가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해서 그의 별을 빠져 나왔으리라고 생각한다. 길을 떠나던 날 아침, 그는 자기 별을 깨끗이 챙겨 놓았다. 그리고 불을 뿜는 화산을 정성들여 쑤셨다.
어린 왕자에게는 활화산이 두 개 있었다. 이 화산은 아침 식사를 끓이는 데에 매우 편리했다. 그에게는 꺼진 화산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마따나,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꺼진 화산도 쑤셔 주었다. 화산들은 쑤셔 주기만 잘하면 폭발하지 않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불을 뿜는다. 화산의 폭발이란 굴뚝의 불과 같은 것이다. 물론 지구에 사는 우리들은 너무도 작아서 우리의 커다란 화산을 쑤셔 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화산 폭발로 해서 많은 곤란을 당하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좀 쓸쓸한 마음으로 나머지 바오밥나무 싹도 뽑아 주었다. 다시는 돌아오게 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늘상 해오던 이런 일이 그날 아침에는 유난스레도 그립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꽃에 물을 주고 고깔을 씌워 잘 보호하려고 했을 때에 그는 마침내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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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
그러나 꽃은 대답이 없었다.
"잘 있어!"
하고 그는 다시 한 번 말했다.
꽃은 기침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감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바보였어. 용서해 줘. 그리고 아무쪼록 행복하도록 해!"
하고 마침내 꽃은 말을 했다.
어린 왕자는 꽃이 포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그는 고깔을 손데 든 채 어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꽃이 이렇게 조용하고 아늑한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응, 나는 네가 좋아."
하고 꽃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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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걸 도무지 몰랐지. 그건 내 탓이었어. 그렇지만 너도 나나 마찬가지로 어리석었어. 아무쪼록 행복해라. 그 고깔은 내버려 둬. 이젠 쓰기 싫어."
"그렇지만 바람이……."
"난 그렇게 감기가 몹시 든 것도 아니야. 찬 바람은 내게 이로울 거야. 나는 꽃이니까."
"하지만 벌레들이……."
"나비를 보려면 벌레 두세 마리쯤은 견뎌내야 해. 나비는 참 예쁜 모양이던데. 그렇지 않으면 누가 나를 찾아 주겠어. 너는 멀리 가 있을 거고. 큰 짐승들은 조금도 겁날 것이 없어. 나는 발톱이 있으니까."
그러면서 꽃은 천진스럽게 제 가시 네 개를 가리켰다. 그리고 말을 이어,
"그렇게 우물쭈물하지 말아요. 속이 상해. 떠나기로 작정했으면 뚝 떠나는 것이지."
그 꽃은 우는 꼴을 어린 왕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렇게도 거만한 꽃이었다. 


10

어린 왕자의 별은 소혹성 325호, 326호, 327호, 328호, 329호, 330호가 있는 쪽에 있었다. 그래서 일거리도 구하고 무엇을 배우기도 할 생각으로 이 별들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맨 처음 찾아간 별에는 임금님이 살고 있었다.
임금님은 홍포와 수달피로 만든 옷을 입고 극히 간소한 위엄 있는 옥좌에 앉아 있었다.
"아아! 신하가 하나 왔도다."
어린 왕자를 보자 임금님은 소리쳤다.
'나를 한 번도 본 일이 없는데 어떻게 알아볼 수가 있을까?'
하고 어린 왕자는 이상하게 여겼다.
임금님들에게는 이 세상이 아주 간단하다는 것을 어린 왕자는 알지 못했다. 임금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신하인 것이다.
"좀더 자세히 보게 이리 가까이 오라."
하고 임금님은 어린 왕자의 왕 노릇을 하게 된 것이 몹시도 자랑스러워서 말했다.
어린 왕자는 앉을 자리를 둘레둘레 찾아보았으나 별 전체가 그 으리으리한 수달피 망토로 함빡 덮여 있었다. 그래서 서 있는 것이 피로했던 터이라 하품이 나왔다.
"왕의 어전에서 하품을 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니라. 짐은 그를 금하노라."
라고 임금님이 말햇다.
"하품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머나먼 여행을 했고요, 또 잠을 못자서요."
어린 왕자는 사뭇 당황해 하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하품하기를 명하노라. 짐은 몇 해째 하품하는 사람을 통 보지 못했노라. 자! 하품을 하라. 명령이로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겁이 나서 하품을 더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 왕자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흠, 흠! 그러면 짐은 네게 명하노니 하품을 하기도 하고........"
임금님은 빨리빨리 몇 마디 중얼거렸는데 심기가 상한 듯했다.
임금님은 무엇보다도 자기 권위가 존중되기를 원했다. 그는 불복종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전권을 가진 임금님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매우 착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치에 맞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만약에 집이 어떤 장군더러 물새로 변하라고 명령했는데 장군이 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장군의 잘못이 아니라 짐의 잘못일 것이로다."
"앉아도 괜찮습니까?"
하고 어린 왕자는 조심조심 물었다.
"네게 앉기를 명하노라."
이렇게 대답하며 임금님은 수달피 망토의 한편 자락을 점잖게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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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린 왕자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별은 아주 조그마한데 대체 이 임금님은 무엇을 다스리는 걸까?
"전하, 한 말씀 여쭈어 볼 것이 있는데요."
"짐은 네게 질문하기를 명하노라."
임금님은 급히 말을 받았다.
"전하께서는 무엇을 다스리십니까?"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임금님은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모든 것을요?"
임금님은 손을 약간 들어 자기 별과 다른 별들과 떠돌이별들을 가리켰다.
"이것을 모두요?"
하고 어린 왕자가 물었다.
"이 모든 것을......."
하고 임금님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는 전제적 군주일 뿐 아니라 또한 전 우주의 임금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별들이 전하의 명령에 복종합니까?"
"물론이로다. 곧 복종하는도다. 짐은 규율의 여김을 용납지 아니 하노라."
어린 왕자는 이런한 권능을 감탄해 마지 않았다. 자기도 이런 권능이 있다면, 의자를 뒤로 옮길 필요도 없이 해 지는 광경을 하루 마흔네 번뿐 아니라 일흔 두 번이나 백 번까지라도, 아니 이백 번까지라도 구경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어린 왕자는 자기가 살다가 버리고 온 작은 별 생각에 약간 서글픈 마음이 들어서 용기를 내어 임금님에게 한 가지 청을 했다.
"저는 해 지는 것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저를 기쁘게 해 주십시오. 해가 지기를 명령해 주십시오."
"만약에 짐이 어떤 장군더러 나비처럼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니라거나 혹은 희곡을 쓰라거나 혹은 물새로 변하라고 명령을 했는데 장군이 자기가 받은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장군과 짐 둘 중에 누가 잘못이겠는가?"
"전하의 잘못일 것입니다."
하고 어린 왕자는 당돌하게 대답했다.
"옳도다. 각자에게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해야 하느니라. 권위는 우선 이치에 그 터전을 잡는 것이로다. 만약에 네 백성에게 바다에 빠지라고 명령하면 그들은 모반을 일으킬 것이로다. 짐이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은 짐의 명령이 이치에 맞는 까닭이로다."
"그러면 해가 지게 해주십사하고 한 것은요?"
한 번 물어 본 것은 절대로 잊어 버리는 일이 없는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하며 임금님을 일깨웠다.
"너는 해 지는 것을 구경하리로다. 짐은 그것을 요구하겠노라. 그러나 짐의 다스리는 지식에 따라 조건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려야 하노라.'
"언제나 조건이 갖추어지겠습니까?"
임금님은 우선 커다란 달력을 찾아보고 나서 대답했다.
"헴, 헴, 헴! 그것은, 그것은 오늘 저녁 7시 40분경이 될 것이로다. 짐의 명령이 얼마나 잘 이행되는지 너는 보리로다."
어린 왕자는 하품을 했다. 그는 해 지는 구경을 못하게 된 것이 섭섭했다. 그리고 벌써 좀 심심해졌다.
"저는 여기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니 도로 떠나겠습니다."
신하를 한 사람 가지게 된 것이 몹시도 자랑스러웠던 임금님은 대답했다.
"가지 마라. 짐은 너를 대신으로 삼으리라."
"무슨 대신이요?"
"사...... 사법 대신이로다!"
"그렇지만 판결을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그건 모르겠노라. 짐은 아직 나라를 순시한 일이 없도다. 짐은 매우 연로하고 수레를 타고 다닐 자리도 없고, 그렇다고 걸어다니면 피곤해지노라."
"오! 그렇지만 저는 벌써 다 보았습니다."
허리를 굽혀 별 저쪽을 다시 한 번 둘러보며 어린 왕자는 말했다.
"저쪽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너 자신을 판단하라.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로다. 남을 판단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판단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니라. 네가 네 자신을잘 판단하게 되면 너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로다."
"저는 아무데서라도 저 자신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살 필요는 없습니다."
"에헴, 에헴! 짐의 별 어디엔가 늙은 쥐 한 마리가 있는 듯하도다. 밤에 그 쥐가 다니는 소리가 들리는도다. 너는 그 늙은 쥐를 판결할 수 있으리라. 그 쥐를 이따금씩 사형에 처하라. 그러면 그 쥐의 생명은 네 재판에 달려 있으리라. 그러나 매번 특사를 내려서 쥐를 살려 두도록 하라. 그건 한 마리밖에 없음이로다."
"저는 사형에 처하기는 싫습니다. 아무래도 가야 하겠습니다."
"아니로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준비는 다 되었지만 나이 많은 임금의 마음을 조금도 섭섭하게 해 드리고 싶지가 않았다.
"전하의 명령이 조금도 어김없이 이행되기를 원하신다면 이치에 맞는 명령을 제게 내릴 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가령 1분 안에 떠나가라고 명령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좋은 조건이 갖춰진 것같이 생가되는데요."
임금님이 아무 대답도 없으므로 어린 왕자는 좀 망설이다가 한숨을 쉬며 길을 떠났다.
그러자 임금님은 급히 소리쳤다.
"짐은 너를 대사로 임명하노라."
임금님은 잔뜩 위엄을 부리는 것이었다.
어린 왕자는 길을 가며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11

두 번째로 찾아간 별에는 허영쟁이가 살고 있었다.
"아, 아! 숭배자가 하나 찾아오는 구나!"
허영쟁이는 어린 왕자를 보자마자 멀리서부터 소리쳤다.
허영쟁이에게는 다른 사람이 모두 숭배자로 보이는 것이었다.
"안녕, 아저씨 쓴게 모자 아냐?"
"이것은 절하려고 쓰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갈채를 보낼적에 절하기 위한 것이야. 그런데 불행히도 이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이야."
"그래?"
어린 왕자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네 양손을 마주 두드려라."
하고 허영쟁이가 시켰다.
"이건 임금님을 찾아 뵙던 것보다 재미있는데."
어린 왕자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허영쟁이는 모자를 들며 절을 했다. 5분쯤 이렇게 하고 나니 어린 왕자는 이 장난이 심심해지고 질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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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자가 떨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돼?"
그러나 허영쟁이는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허영쟁이들은 칭찬밖에는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너는 정말로 나를 매우 숭배하니?"
하고 허영쟁이가 어린 왕자에게 물었다.
"숭배한다는 건 무슨 말이야?"
"숭배한다는 것은 내가 이 별에서 가장 잘생기고, 가장 옷을 잘 입고, 제일 돈이 많고 제일 똑똑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야."
"그렇지만 이 별에는 아저씨 혼자밖에 없지 않아?"
"날 즐겁게 해다오. 어쨌든 나를 숭배해다오!"
"아저씨를 숭배해요. 그렇지만 그게 아저씨한테 무슨 소용이 있는 거야?"
어린 왕자는 어깨를 약간 들먹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별을 떠났다.
어린 왕자는 길을 가는 동안, 어른들은 참 이상야릇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12

다음 별에는 술고래가 살고 있었다.
이 별에는 아주 잠깐밖에 머무르지 않았으나 어린 왕자는 아주 마음이 우울해졌다.
"아저씨, 거기서 뭘 해?"
빈 병 한 무더기와 가득 찬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술고래를 보고 어린 왕자는 물었다.
"술 마신다."
술고래는 몹시 침울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술은 왜 마셔?"
"잊어 버리려고 마신다."
"무얼 잊어 버려?"
어린 왕자는 벌써 그 술꾼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피한 걸 잊어 버리려고 그러지."
술고래는 머리를 숙이며 자백했다.
"무엇이 창피해?"
어린 왕자는 그를 구원해 줄 생각이 들어 이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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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는 게 창피하지!"
술꾼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는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어린 왕자는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그 별을 하직했다.
어린 왕자는 길을 떠났다.
그리고 어른들은 참말이지 괴상야릇하다고 생각했다.

13

네 번째 별에는 상인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어린 왕자가 왔는데 머리도 쳐들어 보지 않았다.
"안녕 아저씨, 여송연이 꺼졌어."
하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셋에다 둘을 보태면 다섯. 다섯하고 일곱이면 열둘, 열둘에 셋을 더하니까 열다섯이다. 안녕. 열다섯에다 일곱하면 스물둘, 스물둘에다 여섯하면 스물 여덟, 새로 불붙일 시간도 없다. 스물여섯에 다섯을 보태면 서른하나라. 휴우! 그러니까 5억1백 6십 2만 2천 7백 3십 1이 되는 구나."
"무엇이 5억이야?"
"응? 너 그저 거기 있었니? 저어…… 5억 1백만…… 잊어 버렸다. 하도 바빠서. 나는 착실한 사람이야, 쓸데 없는 짓은 않는다. 둘에다 다섯이면 일곱……."
"무엇이 억 1백만이란 말이야?"
한 번 물어 본 말은 평생 그저 지나쳐 본 일이 없는 어린 왕자는 다시 한 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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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은 머리를 쳐들었다.
"내가 쉰네 해째나 이 별에서 살지만 그동안에 방해를 받은 적이 세 번밖에는 없었다. 첫 번은 스물두 해 전인데 어디선지 풍뎅이가 한 마리 떨어졌다. 그놈이 어떻게나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던지 더하기를 넷이나 틀렸다. 두 번째는 11년 전에 신경통이 일어났던 일이 있었다. 나는 운동이 부족해. 산책할 시간이 없단 말이야. 나는 착실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세 번째가 너다. 가만 있자, 5억 1백만…… 이라고 했것다!"
"무엇이 몇 억이란 말이야?"
상인은 조용히 일할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다.
"어떤 때 하늘에 보이는 조그마한 물건이 몇 억이란 말이다."
"파리 말이야?
"아니다, 아니야! 반짝반짝 빛나는 조그만 물건 말이다."
"벌 말이야?"
"아니라니까! 그걸 보고 게으름뱅이들이 공상을 하는, 금빛 도는 조그만 것들 말이다."
"아! 별들 말이야?"
"옳다. 별 말이다."
"그래, 아저씨는 별 5억 1백만 개를 가지고 무얼 해?"
"5억 1백 6십 2만 2천 7백 3십 1개야. 나는 착실하고 정확한 사람이다."
"그래, 아저씨는 그 별을 가지고 무얼 하느냔 말이야?"
"무얼 하느냐고?"
"응."
"하긴 무얼 해. 그걸 차지하는 것이지."
"아저씨 별을 차지하고 있어?"
"그럼."
"그렇지만 난 벌써 임금님도 한 분 봤는데, 그분은……."
"왕들은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것이다. 그건 아주 다른 거야."
"그래, 별을 차지하는 게 아저씨한테 무슨 소용이 있어?"
"부자가 되는 것이지."
"그럼 부자가 되는 건 또 무슨 소용이 있어?"
"누가 다른 별을 발견하면 그걸 또 사는데 소용되는 것이지."
어린 왕자는 이 양반이 어째 좀 주정꾼 비슷한 말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물었다.
"어떻게 별을 차지할 수 있어?"
"별들이 누구의 것이냐?"
상인은 트집을 부리며 되짚어 물었다.
"몰라. 임자가 없지 뭐."
"그러니까 내 것이지. 내가 제일 먼저 그걸 생각했으니까."
"그러면 되는 거야?"
"그러면 되고 말고. 네가 임자 없는 금강석을 얻으면 그 금강석은 네 것이지. 임자 없는 섬을 네가 발견하면 그 섬도 네것이 되지. 네가 무슨 생각을 맨 처음으로 해내면 거기 대해서 바로 특허를 얻을 수 있지. 그 생각은 네 것이니까. 그러므로 그와 같이 별을 차지할 생각을 나보다 먼저 가진 사람이 없으니까 별들이 내 차지가 되는 것이란다."
"그건 참 그래. 그런데 아저씨는 그걸 가지고 무얼 해?"
"그걸 관리한다. 그별들을 세고 또 세고하지. 그건 어려운 일이야. 그러나 워낙 나는 중대한 일에 관심을 많이 쏟으니까."
어린 왕자는 그래도 만족하지 않았다.
"나는 말이야, 목도리가 있으면 그걸 목에 두르고 다닐 수가 있어. 또 꽃이 있으면 그걸 따서 가지고 다닐 수도 있어. 그렇지만 아저씨는 별을 딸 수는 없지 않아?"
"응, 하지만 난 그걸 은행에 맡길 수가 있다."
"그건 무슨 말이야?"
"조그만 종이 쪽지에다 내 별의 수를 적어서 서랍에 넣고 잠근단 말이다.""
"그뿐이야?"
"그뿐이지."
'그거 재미있다. 꽤 시적인데. 그렇지만 그리 중대한 일은 아니야'
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어린 왕자는 중대한 일이라는 데에 대해서 어른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꽃이 하나 있는데 매일 물을 줘. 나는 또 화산이 셋이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쑤셔 주지. 죽은 화산까지도 쑤셔 주거든. 어찌 될지 모르니까. 내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 꽃이나 화산에게는 이로운 일이야. 그렇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이로울 게 없어."
상인은 입을 벌렸으나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해서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났다.
어린 왕자는 길을 가며, 어른들은 참말이지 아주 이상야릇하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14

다섯 번째 별은 아주 이상한 별이었다. 그 중 작은 별이어서 그저 가로등 하나와 점등인 하나를 받아들일 만한 자리가 있을 뿐이었다. 하늘 한 구석 집도 없고 사람도 없는 별에, 가로등과 점등인이 무슨 필요가 있는 것인지 어린 왕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임금이나 허영쟁이나 상인이나 주정뱅이보다는 덜 어리석다. 적어도 그가 하는 일은 뜻있는 일이니까. 가로등을 켜면 별이나 꽃을 하나 돋아나게 하는 거와 마찬가지고, 가로등을 끄면 꽃이나 별을 잠들게 하는 거니까. 이건 매우 아름다운 일이므로 참으로 이로운 것이다.'
그 별에 발을 들여 놓으며 어린 왕자는 점등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안녕, 아저씨. 왜 지금 마악 가로등을 껐어?"
"명령이다. 안녕."
점등인이 대답했다.
"명령이란 무어야."
"가로등을 끄라는 명령이다. 안녕."
그러고 나서 다시 가로등을 켰다.
"그런데 왜 불을 다시 켰어?"
"명령이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데."
하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알아듣고 어쩌고 할 것이 못돼. 명령은 명령이야, 안녕."
그러면서 가로등을 다시 껐다.
그런 다음 붉은 바둑판 무늬가 박힌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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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하는 일은 참 기막힌 일이다. 전에는 괜찮았다. 아침에는 끄고 저녁에는 켜고 했었지. 그리고 나머지 낮 동안에는 쉴 수도 있고 나머지 밤 사이엔 잘 수도 있었으니까."
"그럼 그 뒤로 명령이 바뀌었어?"
"명령이 바뀌지 않았으니까 큰 일이란다. 별은 해마다 자꾸자꾸 더 빨리 도는데 명령은 그대로 있단 말이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은 별이 1분에 한 번씩 도니 이젠 1초도 쉴 시간이 없단 말이다. 1분에 한 번씩 켜고 끄고 하니까!"
"거 참 이상한데. 아저씨네 별에서는 하루가 1분이라!"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벌써 한달이나 된다."
"한 달!"
"그럼 30분이니 30일이지. 안녕."
그리고 다시 불을 켰다.
어린 왕자는 점등인을 보며 명령에 이렇게까지 충실한 이 사람이 좋아졌다.
그는 전에 의자를 끌어당겨 해를 지게 하였던 일이 생각났따. 그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어졌다.
"이거 봐, 아저씨. 나는 아저씨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방법을 알아."
"그야 쉬고 싶다뿐이겠니?"
하고 점등인은 말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충실하면서 동시에 게으를 수도 있으니까.
어린 왕자는 말을 이었다.
"아저씨 별은 하도 작아서 세 발자국이면 한 바퀴 돌 수 있어. 그러니까 언제든지 해를 볼 수가 있게끔 천천히 걷기만 하면 그만이야. 아저씨가 쉬고 싶을 때는 걷는단 말이야. 그러면 아저씨의 원대로 해가 얼마든지 오래 갈 거니까."
"그것은 내게 별로 소용이 없어.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은 잠을 자는 것이니까."
"거 안됐는데."
하고 어린 왕자가 말하니까,
"안됐고 말고. 안녕."
하고 점등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가로등을 껐다.
어린 왕자는 길을 다시 가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 왕이니 허영쟁이니 주정꾼이니 상인이니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멸시를 당할 거다. 그러나 우스꽝스럽게 생각되지 않는 사람은 이 사람 하나뿐이다. 그건 아마도 자기의 일 아닌 다른 일을 보살피니까 그렇겠지."
그는 섭섭해서 한숨을 내쉬며 또 이런 생각도 하였다.
"내가 친구를 삼을 만한 사람은 그 사람 하나뿐이었는데, 그렇지만 그 별은 너무 작아서 둘이 있을 자리가 없어."
어린 왕자가 차마 자백을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스물네 시간 동안에 해가 1440번이나 지는 것 때문에, 이 복 받은 별을 못 잊어 한다는 사실이었다.

15

여섯 번째 별은 열 곱이나 큰 별이었다. 거기에는 무지하게 큰 책을 쓰고 있는 늙은 분이 살고 있었다.
"야! 탐험가가 하나 왔다!"
어린 왕자를 보자 노인은 소리를 질렀다.
어린 왕자는 상 위에 앉아서 숨을 약간 몰아쉬었다. 벌써 그렇게도 긴 여행을 했으니까.
"너 어디서 오니?"
하고 노인이 말했다.
"이 큰 책은 무엇입니까? 할아버지는 여기서 무얼 하세요?"
하고 어린 왕자는 말했다.
"나는 지리학자다."
"지리학자란 무엇입니까?"
"바다가 어디 있고 강이 어디 있고 도시와 산과 사막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학자다."
"그것 참 재미있는데. 이제야 참말 직업다운 직업을 보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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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지리학자의 별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그는 아직 이처럼 훌륭한 별을 본 일이 없었다.
"할아버지 별은 참 아름답습니다. 큰 바다들도 있습니까?"
"나는 알 수 없다."
지리학자가 대답했다.
"그러세요?"
어린 왕자의 기대가 어그러졌다.
"산은요?"
"내가 알 수 있니!"
"그럼 도시며 강이며 사막은요?"
"그것도 알 수 없다."
"할아버지는 지리학자이시면서 그러세요?"
"맞았다. 그러나 나는 탐험가는 아니다. 내게는 탐험가가 도무지 없단 말야. 지리학자는 도시며 강이며 산이며 대양이며 사막들을 세러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지리학자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므로 돌아 다닐 수가 없다. 서재를 떠나지 못해. 그러나 서재에서 탐험가들을 만나 본다. 탐험가들에게 무어 가지고 그들의 추억을 기록해 둔다. 그래서 그 중의 어떤 사람이 본 것이 흥미가 있으면 지리학자는 그 탐험가의 인격을 조사한다."
"그건 왜요?"
"어떤 탐험가가 만약 거짓말을 했다면 지리책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것이니까 그렇지. 또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탐험가도 그렇고."
"그건 어째서요?"
"주정꾼들은 술에 취해 사물을 둘로 보니까 그렇지. 그렇게 되면 지리학자는 산이 하나밖에 없는 곳에 둘을 적어 넣게 되거든."
"나는 좋지 못한 탐험가가 될 만한 사람을 하나 알아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서 탐험가의 인격이 좋아 보이면 그가 발견한 것에 대해서 조사를 한다."
"그걸 보러 갑니까?"
"아니다. 그건 너무 복잡해. 탐험가더러 증거물을 내보이라고 말한다. 가령 큰 산을 발견했다면 거기서 큰 돌을 가져 오라고 요구한다."
지리학자는 갑자기 서둘렀다.
"그런데 너는 멀리서 왔지! 탐험가지! 네가 살던 별 이야기를 해다오."
그러면서 장부를 펼쳐 놓고 깎느나. 그는 탐험가드르이 이야기를 우선 연필로 적어 둔다. 탐험가가 증거품을 내놓아만 잉크로 적는 것이다.
"그래서?"
하고 지리학자는 물었다.
"오오, 제 별은 별로 흥미 있는 것이 못 돼요. 아주 조그마한 겁니다. 화산이 셋이 있는데 둘은 활화산이고 하나는 사화산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나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
"꽃도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꽃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그건 어째서요? 제일 예쁜 건데요."
"꽃들은 단명하니까 그렇다."
"단명한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지리책은 모든 책 중에서 가장 귀중한 책이다. 그것은 절대로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 없다. 산이 자리를 바꾼다는 건 아주 드문 일이고, 큰 바다의 물이 말라 버린다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이다. 우리는 변치 않는 것만 쓰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화산도 다시 불을 뿜을 수 있어요."
하고 어린 왕자가 말을 막았다.
"그런데 단명이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화산이 꺼졌건 불을 다시 뿜건 우리에겐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산이야. 그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단명이라는 건 무슨 말이에요?"
한 번 물어 본 것은 평생 그저 지나쳐 버리는 일이 없는 어린 왕자는 연거푸 물었다.
"그것은 오래지 않아 사라질 염려가 있는 것이란 말이다."
"내 꽃이 오래지 않아 사라질 염려가 있어요?"
"아무렴."
내 꽃이 단명한다! 그런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가시가 네 개밖에 없을 뿐인 그런 꽃을 집에 혼자 버려두고 왔으니!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느끼는 후회의 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용기를 냈다.
"할아버지는 제가 어디에 가 보았으면 좋으시겠습니까?"
"지구성을 가 보았으면 한다. 그 별은 평판이 좋으니까."
그리하여 어린 왕자는 제 꽃 생각을 하면서 길을 떠났다.

16

일곱 번째 별은 그러니까 지구였다.
지구는 시시한 별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임금님이 1백 11명 -물론 흑인 임금님까지 합쳐서 말이다 - 지리학자가 7천 명, 상인이 90만 명, 7백 50만 명의 주정뱅이, 3억 1천 1백만 명의 허영쟁이, 즉 20억 가량 되는 어른들이 살고 있었다.
전기를 발명하기 전까지는 6대주 전체를 통틀어 46만 2천 5백 11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점등인을 두어야 했다는 말을 하면 지구의 넓이가 얼마나 큰가 짐작이 갈 것이다.
좀 떨어진 데서 보면 그것은 찬란한 광경이었다. 이 무리의 움직임은 마치 가극에서 보는 발레의 움직임 모양으로 질서 정연한 것이었다. 우선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점등인들이 일할 차례가 왔다. 이들이 등불을 켜고 자러 가고 나면, 이번에는 중국과 시베리아의 점등인들이 춤을 추러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 역시 무대 뒤로 사라지면, 다음은 러시아와 인도의 점등인들 차례였다. 그 다음은 아프리카와 유럽, 다음은 남아메리카 그리고 북아메리카, 이런 순서였다. 그런데 그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순서가 틀리는 일은절대로 없었다. 그것은 웅장한 광경이었다. 다만, 북극에 하나밖에 없는 장명등 켜는 사람과 남극에 하나밖에 없는 장명등 켜는 사람만이 한가롭고 마음 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그들은 1년에 두 번만 일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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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재치를 부리려고 하면 좀 거짓말을 하게 되는 수가 있다. 내가 말한 점등인들 이야기는 아주 정직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지구에 대해서 틀린 생각을 갖게 할 염려가 없지 않다. 사람들은 지구 위의 아주 작은 부분밖에는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에 사는 20억 명이 무슨 집회때 모양으로 바싹 다가선다면, 길이 20마일 정도 되는 광장 안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물론 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자리를 훨씬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줄로 생각하며, 자기들이 바오밥나무같이 중요한 줄로만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 보고 계산을 한 번 해 보라고 할 일이다.
그들은 숫자를 대단히 좋아하므로 이렇게 하면 만족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이 문제를 푸느라고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럴 필요가 없다. 내 말을 믿으면 된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 이르자 아무 사람도 만날 수 없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벌써 다른 별에 찾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참인데, 그때 모래 위에서 달빛 같은 무슨 고리가 움직였다.
"안녕."
하고 어린 왕자는 친절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안녕."
하고 뱀이 대답했다.
"내가 떨어진 데가 무슨 별이니?"
하고 어린 왕자는 물었다.
"지구다, 아프리카야."
뱀의 대답이었다.
"아 그래! 그럼 지구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니?"
"여기는 사막이야. 사막에는 사람이 없어. 그렇지만 지구는 크단다."
하고 뱀이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돌 위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별들은 모든 사람들이 언제고 저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저렇게 빛이 나는 걸까? 내 별을 봐라.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어. 하지만 멀기도 하지!"
"예쁜 별이로구나, 그런데 너는 여기 뭣하러 왔니?"
하고 뱀이 말했다.
"난 어떤 꽃하고 말썽이 생겼단다."
하고 어린 왕자는 대답했다.
"그래?"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입을 다물었따.
"사람들은 어디에 있니? 사막에서는 좀 외로운데."
이윽고 어린 왕자는 다시 입을 열었따.
"사람들 틈에 있어도 외로운 거야."
하고 뱀이 대답했다.
"너는 참 이상한 짐승이다. 손가락같이 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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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왕의 손가락보다도 더 무섭지."
어린 왕자는 빙그레 웃으며,
"그렇게 무섭지는 않은데. 넌 다리도 없지. 여행도 못하지."
"난 너를 배보다 더 멀리 데리고 갈 수가 있어."
뱀은 어린 왕자의 말목에 팔찌 모양을 감기며 또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건드리는 사람은 제가 나왔던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거야. 하지만 는 순진하고 또 별에서 왔으니......"
어린 왕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도 연약한 네가 바위투성이 땅 위에 있는 것을 보니 가엾은 생각이 드는구나. 네 별이 몹시 그리우면 나는 언제고 너를 도와 줄 수가 있어. 나는..."
"오! 잘 알았다. 그런데 어째서 너는 밤낮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니?"
어린 왕자는 말했다.
"난 그걸 모두 풀어 준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18

어린 왕자는 사막을 건너질렀으나 만난 것이라고는 꽃 하나밖에는 없었다.
꽃잎이 셋 달린 아주 오죽잖은 꽃이었다.
"안녕."
하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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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꽃도 대답했다.
"사람들은 어디 있니?"
어린 왕자는 공손히 물었다.
이 꽃은 어느 날 대상들이 지나가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사람들? 예닐곱 명 있기는 한가 봐. 몇 해 전엔가 그 사람들을 본 일이 있어. 그렇지만 어딜 가야 만날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바람이 부는 대로 떠돌아다니니까. 그 사람들은 뿌리가 없어. 그래서 많은 불편을 느끼는 거야."
"잘 있어라."
하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잘 가라."
하고 꽃도 대답했다.

19

어린 왕자는 높은 산에 올라갔다. 그가 아는 산이라고는 자신의 별에 있는, 무릎께까지 닿은 세 화산밖에 없었다. 꺼진 화산을 그는 걸상 대신으로 걸터앉았었다.
어린 왕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높은 산에서는 한눈에 지구 전체와 사람들을 다 볼 수 있겠지."
그러나 그가 겨우 본 것은 몹시 날카로운 바위로 된 산봉우리뿐이었다.
"안녕."
그는 무턱대고 말해 보았다. 그랬더니,
"안녕…… 안녕…… 안녕……."
메아리가 대답했다.
"누구냐?"
하고 어린 왕자가 말하니,
"누구냐…… 누구냐…… 누구냐……. "
하고 메아리가 대답했다.
"나하고 친하자.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
그래서 어린 왕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상도 한 별이지. 아주 메마르고 몹시 뾰족하고 소금이 버석버석 하고. 게다가 사람들은 상상력도 없이 남이 하는 말을 되뇌이기나 하고. 내 별에는 꽃이 하나 있었지만 그 꽃은 어제나 말을 먼저 걸곤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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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어린 왕자는 오랫동안 바위와 눈 위로 이리저리 헤맨 끝에 마침내 길을 한 찾아내게 되었다. 그런데 길은 모두 사람들이 있는대로 향하는 것이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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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린 왕자는 말했다.
그곳은 장미꽃이 피어 있는 정원이었다.
"안녕."
하고 장미꽃들도 말했다.
어린 왕자가 꽃들을 쳐다보니 모두 제 꽃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이가 없어 꽃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우리들은 장미꽃이야."
"아, 그래?"
어린 왕자는 자기 자신이 아주 불행하게 생각되었다.
꽃은 이 세상에 자신과 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는데 지금 이 정원 하나만 해도 똑같은 꽃이 5천 송이나 있지 않은가!
'내 꽃이 이걸 보면 꽤 속이 상할 거야....'
어린 왕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창피한 꼴을 겪지 않으려고 기침을 몹시 하고 죽는 시늉을 할 거야. 그러면 나는 또 저를 간호해 주는 체해야 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게도 창피를 주려고 정말 죽을 테니까....'
또 이런 생각도 했다.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을 가져서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장미꽃 한 송이박에 가진 것이 없구나. 그것하고 무릎에 닿는 화산 셋, 그 중에도 하나는 영영 꺼져 버렸는지도 모르는 것, 그것 가지고는 내가 위대한 왕자는 못되겠구나.'
그래서 어린 왕자는 풀 위에 엎드려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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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런 때에 여우가 나타났다.
"안녕."
하고 여우가 말했다.
"안녕."
하고 어린 왕자는 공손히 대답하며 돌아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 여기 있어, 사과나무 밑에……."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누구냐? 참 이쁘구나."
하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여우야."
"나하고 와서 놀자, 난 아주 쓸쓸하단다."
"난 너하고 놀 수가 없단다. 우린 서로 길이 안 들었으니까."
하고 여우가 대답했다.
"아! 용서해라."
그러나 조금 생각한 뒤에 어린 왕자는 덧붙여 말했다.
"네가 말한 '길들인다'는 건 무슨 말이냐?"
"넌 여기 사는 아이가 아니로구나. 넌 무얼 찾는 거냐?"
하고 여우가 말했다.
"나는 사람들을 찾는 거다. 근데 '길들인다'는 건 무슨 말이냐?"
"사람들은 총을 가지고 사냥을 해. 그건 대단히 무서운 노릇이야. 사람들은 또 닭을 기르기도 해. 사람들은 그거 한 가지만이 필요할 뿐이야. 너도 닭을 찾니?"
"아니, 난 친구를 찾는 거다. 길들인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던 일이야. 그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란다."
하고 여우가 대답했다.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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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지. 내게 있어서 너는 아직 몇 천, 몇 만 명의 어린아이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내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네가 필요 없고 너는 내가 아쉽지도 않아. 그러니 네게는 나라는 것이 몇 천, 몇 만 마리와 같은 여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아쉬워질 거야. 나에게는 네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될 것이고 또한 네게는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거야……."
"이제 좀 알아듣겠다."
하고 어린 왕자는 말하였다.
"내겐 꽃이 하나 있는데, 그 꽃이 날 길들였나 봐……."
"그럴 수도 있겠지, 지구에는 별의별 물건이 다 있으니까……."
"으응, 지구에 있는 게 아니야."
하고 어린 왕자가 대답하자, 여우는 어지간히도 귀가 솔깃한 모양이었다.
"그럼 다른 별에 있어?"
"응."
"그 별에 사냥꾼들이 있니?"
"아니."
"야, 거 괜찮은데! 그럼 닭은?"
"없어."
"완전한 건 아무것도 없다니까……."
하고 여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여우는 자기 이야기로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내 생각은 변화가 없어. 나는 닭들을 잡고 사람들은 나를 잡고. 닭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해. 그래서 나는 좀 심심하단 말이야.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는 것처럼 환해질 거야. 난 어느 발소리하고도 틀린 네 발소리를 알게 될 거야. 다른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나는 땅 속으로 들어가지. 그러나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소리 모양으로 나를 굴 밖으로 불러 낼 거야. 그리고 저걸 봐라!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안 먹는다. 그러므로 밀은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야. 밀밭을 보아도 내 머리에는 아무것도 떠오르는게 없어. 그게 몹시 슬프단 말이야. 참, 그건데 네 머리는 금빛깔이지! 그러므로 네가 나는 길들여 놓으면 참 기막힐 거야. 금빛깔이 도는 밀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리고 나는 밀밭으로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좋아질 거야."
여우는 말을 그치고 어린 왕자를 오래오래 쳐다보더니,
"제발... 나를 길들여 다오."
라고 했다.
"그러지."
어린 왕자는 대답했다.
"그렇지만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들을 찾아내야 하니까."
"이젠 길들인 것밖에 알지 못할 거야. 사람들은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사람들은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산단 말이야. 그렇지만 친구를 파는 장사꾼이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 되었단다. 친구가 갖고 싶거든 나를 길들여!"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니?"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처음에는 내게서 좀 떨어져서 그렇게 풀위에 앉아 있어. 내가 곁눈으로 너를 볼 테니 너는 암말도 하지 마라. 말이란 오해가 생기는 근원이니까. 그러나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앉아도 돼……."
어린 왕자는 이튿날 다시 왔다. 그러자 여우가 이렇게 말했다.
"같은 시간에 왔으면 더 좋았을 건데.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을 느낄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안절부절을 못하고 걱정이 되고 말 거야. 행복이 얼마나 값 있다는 걸 알아낼 거란 말이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나는 몇 시에 내 마음을 곱게 치장해야 할지 영 알 수가 없지 않아?……의식(儀式)이 필요한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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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란 무어야?"
하고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너무나 잊혀진 거야. 그건 어떤 날이 그 밖의 날고, 어떤 시간이 그 외의 시간과 다르게 되는 거야. 가령 사냥꾼들에게도 의식이 있어. 목요일에는 동네 처녀들하고 춤을 춘단 말이야. 그래서 목요일은 기막히게 좋은 날이란다. 나는 포도밭까지 소풍을 가지. 사냥꾼들이 아무 때고 춤을 춘다고 해 봐. 그저 그날이 그날 같을 게고, 나는 휴가라는 게 영 없을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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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그리고 떠날 시간이 가까워 오자 여우가 말했다.
"아!…… 난 울 테야."
"그런 네 탓이야. 나는 너를 괴롭힐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네가 길을 들여 달라고 그랬지……."
"그럼."
"그런데 울려고 하면서!"
"그럼."
"그러니 넌 아무 이익도 본 게 없구나!"
"이익 본 게 있어. 밀 빛깔 때문에."
하고 여우는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어,
"장미꽃들에게 다시 가 봐라. 네 장미꽃 같은 것이 세상에 둘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거다. 그리고 네가 나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오면 선물로 비밀 하나를 가르쳐 주마."
라고 했다.
어린 왕자는 장미꽃들을 다시 만나러 갔다.
"너희들은 내 장미꽃하고 조금도 같지 않아.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못했지. 내 여우도 너희나마찬가지였어. 몇 천, 몇 만 마리의 다른 여우에 지나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 여우를 내 친구로 삼으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었어."
그러자 장미꽃들은 아주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어린 왕자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너희들은 곱긴 하지만 속이 비었어. 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는 없단 말이야. 물론 내 장미도 보통 행인에겐 너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될 거야. 그렇지만 그 꽃 하나만으로 너희들을 모두 당하고도 남아. 그건 내가 물을 준 꽃이니까. 내가 고깔을 씌워 주고 병풍으로 바람을 막아 준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이 ― 나비를 보게 하려고 두세 마리는 남겨 두었지만 ― 그 장미꽃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원망하는 말이나 자랑하는 말이나 혹 어떤 때는 점잔을 빼는 것까지도 들어 준 것이 그 꽃이었으니까. 그건 내 장미꽃이니까."
그리고 여우한테 도로 와서 작별 인사를 했다.
"잘 있거라."
"잘 가라, 내 비밀을 일러 줄께. 아주 간단한 거야. 만약 무엇을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는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되뇌었다.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허비한 시간 때문에 네 장미꽃이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된 것이다."
"내 꽃을 위해서 허비한 시간 때문에……."
잊어 버리지 않으려고 어린 왕자는 되받아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 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어 버리면 안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네가 책임을 져야 되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머리에 새겨두기 위해서 어린 왕자는 다시 한 번 말했다.

22

"안녕."
하고 어린 왕자가 말하니,
"안녕."
하고 포인트 맨이 대답했다.
"아저씨, 여기서 뭘 하고 있어?"
"열차 손님들을 천 명씩 추린단다. 그 손님들을 태운 열차를 오른쪽으로 보내기도 하고 왼쪽으로 보내기도 한단다."
그러는 중에 불이 환하게 켜진 특급 열차가 천둥같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포인트 조종실을 흔들어 놓았다.
"저 사람들 상당히 바쁜데. 뭘 찾아가는 거야?"
하고 어린 왕자가 물었다.
"기관사 자신도 그걸 모른단다."
또 다른 특급 열차가 반대 편에서 우렁찬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그 사람들이 벌써 돌아오는 거야?"
하고 어린 왕자가 물었다.
"아까 그 사람들이 아니라, 두 차가 서로 비켜가는 거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있던 데서는 만족하지 않았어?"
"사람들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만족하는 법이 없단다."
그러는데 셋째 특급 열차가 으르렁거리며 달려 들어왔다.
"이 사람들은 먼젓번 손님들을 쫓아가는 거야?"
"쫓아가긴 무얼 쫓아가? 그 속에서 자거나 하품을 하거나 하는 거지. 그저 아이들만이 유리창에다 코를 비벼대고 있지."
"그저 아이들만이 자기들이 찾는 게 무언지를 알고 있어. 아이들은 헝겊으로 만든 각시 한 때문에 두 시간을 허비하고 그래서 그 각시가 결국엔 아주 중요한 것이 돼 버려. 그러니까 누가 그걸 뺏으면 우는 거야."
하고 어린 왕자가 말하니,
"아이들은 운이 좋아."
하고 포인트 맨이 말하였다.

23

"안녕."
하고 어린 왕자가 말하니,
"안녕."
하고 장사꾼이 대답했다. 그는 갈증을 푸는 데 완벽한, 알약을 파는 장사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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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을 한 주일에 한 알씩 먹으면 다시는 목이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저씨, 그건 왜 파는 거야?"
"이건 시간이 굉장히 절약되는 약이다. 전문가들이 계산을 했는데 한 주일에 53분이 절약된단 말이야."
"그래, 53분을 가지고는 뭘하는 거야?"
"저하고 싶은 걸 하지."
"내게 53분의 여유가 있다면, 샘 있는 데로 천천히 걸어갈텐데."
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24

사막에서 비행기 고장을 일으킨 지가 여드레째 되는 날이라, 나는 마지막 한 방울 물까지 마시면서 어린 왕자의 이 장사꾼 이야기를 들었다.
"아! 네 이야기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비행기를 아직 못 고쳤고 이제는 마실 물조차 떨어졌으니, 샘 있는 데로 천천히 걸어갈 수나 있었으면 좋겠구나!"
"내 친구 여우가……."
"얘야, 지금은 여우가 문제가 아니야!"
"왜?"
"우린 목이 말라 죽을 테니까."
그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이런 대답을 했다.
"죽게 되더라도 친구를 두었다는 건 좋은 일이야. 나는 여우 친구를 하나 둔 게 참 좋아."
'이 애는 얼마나 위급한지를 알지 못하는구나. 영 배도 안 고프고 목도 안 마르고, 그저 햇볕만 좀 있으면 그만이니까…….'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나를 돌아다보며 내 생각에 대답을 했다.
"나도 목이 말라……. 우리 우물을 찾아 가."
나는 맥이 탁 풀렸다. 끝없는 사막 가운데에서 무턱대고 우물을 찾아나선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렇지만 우리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을 아무 말 없이 걷고 나니 해가 떨어지고 별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나는 갈증 때문에 열이 좀 있어 별들이 꿈속같이 보였다. 어린 왕자가 한 말이 내 기억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 너도 목이 마르단 말이냐?"
그러나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이런 말만 했다.
"물은 마음에도 좋을 수가 있어……."
나는 그의 대답을 알아듣지 못했으나 아무 말도 안했다. 그에게 물어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피곤해서 앉았다. 나도 그의 옆에 자리잡고 앉았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윽고 또 이러한 말을 했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꽃 때문에 별들은 아름다운 거야."
나는 '그렇고 말고'하고 대답한 뒤에 아무 말 없이 달빛 아래 펼쳐져 있는 주름진 모래 언덕을 바라보았다.
"사막은 아름다워."
어린 왕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것은 정말이었다. 나는 언제나 사막을 좋아했다. 모래 언덕에 앉아 잇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침묵 속에 무엇인가 빛나는 것이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천만 뜻밖에도 모래의 이 신비로운 빛남을 갑자기 이해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 나는 오래된 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에는 보물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물론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또 어쩌면 찾아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보물로 인해서 그 집은 매력이 있었다. 그 속 깊숙이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맞았다.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오는 거다."
하고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아저씨가 내 여우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난 좋아."
어린 왕자가 잠이 들기에 나는 그를 품에 안고 다시 길을 떠났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깨지기 쉬운 보물을 안고 가는 듯싶었다. 이 세상에 그보다도 더 여린 물건은 없으리라고까지 생각되었다. 그 하얀 이마, 감긴 눈,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들을 달빛에 비춰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보는 것은 오직 껍질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 보이는 것이다.'
반쯤 벌어진 그의 입술이 방그레 웃음을 머금는 것을 보고 또 이런 생각도 했다.
'잠이 든 어린 왕자가 이렇게까지 깊이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이 애가 꽃 하나에 대해서도 충실한 것과, 잠을 자는 동안에도 등불의 불꽃 모양으로 그 안에서 빛살을 내쏘는 장미꽃의 모습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애가 생각보다 더 여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불은 잘 가려주어야 한다. 바람이 한 번 몰아치면 꺼질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걸어가다가 해가 뜰 무렵에야 우물을 발견하였다.


25

"사람들은 특급 열차를 집어 타지만, 무얼 찾아가는지를 몰라. 그러니까 갈팡질팡하고 빙빙 돌고는 해...."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그건 소용 없는 짓이야..."
라고 했다.
우리가 찾아낸 우물은 사하라 사막에 있는 우물과같은 것이 아니었다. 사하라의 우물들은 그저 모래에 구멍을 뚫어 놓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우물들은 동네 우물과 같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동네가 없기에 나는 꿈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상도 하지, 도르래며 물통이며 줄이 모두 마련돼 있구나."
하고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그는 웃으며 줄을 만져 보고 도르래를 돌려 보고는 했다. 그러자 바람이 오랫동안 잤다가 다시 일 때 낡은 풍차가 삐걱거리는 모양으로, 도르래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41.gif
"아저씨, 이 소리가 들려? 우리가 이 우물을 깨우니까 우물이 노래를 하는 거야."
나는 그에게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마. 네게는 너무 무겁다."
나는 물통을 천천히 우물 귀퉁이까지 올려, 떨어지지 않게 잘 얹어 놓았다. 내 귀에는 아직도 도르래의 노래가 쟁쟁하고, 출렁거리는 물속에 해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난 이 물이 마시고 싶었어. 물을 좀 줘...."
그리하여 나는 그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알았다.
나는 물통을 그의 입술까지 닿게 해 주었다. 그는 눈을 감고 물을 마셨다. 기쁘기가 명절 같았다. 그 물에는 보통 먹는 물과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어렸을 적에 내가 받은 성탄 선물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등불, 자정 미사의 음악, 서로 주고받는 상냥한 웃음으로 더욱 빛나는 것과 같았다.
"아저씨하고 같은 사람들은 한 정원에 장미꽃을 5천 송이나 가꾸지만... 자기네들이 찾는 것을 거기서 얻어내지는 못해."
하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 찾아내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장미꽃 한 송이나 물 한 모금에서 얻어지는 수도 있을 거야...."
"그야 그렇지."
그러자 어린 왕자는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눈으로는 보지 못해. 마음으로 찾아야 해."
나는 물을 마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모래는 떠오르는 햇빛을 받으면 꿀 빛깔이 돈다. 나는 이 꿀 빛깔에도 행복을 느꼈다. 무엇때문에 마음을 괴롭혀야 하겠는가?
"아저씨, 약속을 지켜야지."
내 옆에 다시 앉은 어린 왕자는 상냥스럽게 이런 말을 했다.
"무슨 약속?"
"아저씨도... 내 양에 씌울 구레 말이야... 난 그 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나는 주머니에서 끄적거려 두었던 그림을 꺼냈다. 어린 왕자는 그림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그린 바오밥나무 말이야, 그건 어째 좀 배추 비슷한 것 같아."
"그래?"
나는 바오밥나무 그림을 가지고 퍽 뻐기고 있었는데....
"여우는... 귀가 뿔같이 생겼어.... 그리고 너무 길어!"
그러고는 또 웃었다.
"얘, 너는 심하기도 하다. 내가 속이 안 뵈는 보아구렁이밖에 다른 그림을 그릴 줄 알았어야 말이지."
"응, 괜찮을 거야. 아이들은 아니까."
나는 연필로 굴레를 그렸다. 그 굴레를 어린 왕자에게 주니 가슴이 꽉 차오름을 느꼈다.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이거 봐, 내가 지구에 떨어진 거 말이야... 내일이 한 돌이야."
그리고 말을 끊었다가 다시,
"바로 요 근처에 떨어졌었어...."
그러며 얼굴을 붉혔다.
나는 왠지 모르게 또다시 이상한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럼, 여드레 전 내가 너를 알게 된 날 아침, 사람 사는 지방에서 수만 리 떨어진 데서 너 혼자 그렇게 거닐고 있던 건 우연히 그런 게 아니로구나! 네가 떨어진 데로 돌아가는 길이었니?"
어린 왕자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나는 망설이며 말을 이었다.
"아마 돌 때문에 그런 거지?"
어린 왕자는 한 번 더 얼굴을 붉혔다. 그는 물어 보는 것에 대답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애가 얼굴을 붉히면 그렇다는 뜻이 아닌가!
"아! 나는 겁이 난다...."
그러나 그 애는 이런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이제 일을 해야 해. 기계 있는 쪽으로 다시 가야 해.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내일 저녁에 다시 와...."
그러나 나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여우 생각이 났다. 한 번 길을 들여 놓으면 좀 울 염려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6

우물 옆에는 오래 된 돌담 무너진 것이 있었다. 이튿날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린 왕자가 그 위에 올라앉아 다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부터 보였다. 그리고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그래, 넌 생각이 안 난단 말이냐? 바로 여기는 아니야!"
그리고 '아니야! 날짜는 맞지만, 자리는 여기가 아니야' 하는 것을 보니, 저편에서 무슨 대답 소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대로 담을 향해 걸어갔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다시 말을 건넸다.
"…… 물론이지. 모래에 있는 내 발자국이 어디서 시작하는지를 봐. 거기서 기다리면 돼. 내 오늘밤에 거기 가 있을테니."
나는 담에서 20미터 되는 데에 있었는데, 여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너 좋은 독을 가지고 있니? 날 오랫동안 아프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발을 멈칫했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그저 알아듣지 못하는 채였다.
"그럼 이젠 가 봐……. 내려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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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서야 나는 담 밑을 내려다보다가 펄쩍 뛰었다. 30초에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 노란 뱀 하나가 어린 왕자를 향해 대가리를 쳐들고 있지 않은가! 나는 권총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지며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발소리를 들은 뱀은, 마치 잦아들어가는 분수 모양으로 모래 속으로 소리도 없이 기어가더니, 별로 서두르지도 않고 가벼운 쇳소리를 내며 돌 틈으로 사라졌다. 내가 담 밑까지 이르렸을 때에는, 겨우 눈같이 창백해진 어린 왕자를 품에 받아 안을 시간의 여유밖에 없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이젠 뱀들하고 얘길 다하고."
나는 그가 끌러 본 적이 없는 금빛 목도리를 끄르고 관자놀이를 적셔 준 다음 물을 먹여 주었다. 그러나 이젠 그에게 무슨 말을 물어 볼 엄두도 못냈다. 그는 나를 시름없이 쳐다보고 양팔로 내 목을 껴안았다. 그의 가슴이 카빈에 맞아 죽어가는 새 모양 뛰는 것이 들렸다.
"아저씨가 기계 고장을 고치게 돼서 난 참 좋아. 이제 아저씨가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됐지……."
"그럴 어떻게 아니?"
나는 마침 천만 뜻밖에도 고장을 고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그에게 알리러 왔던 참이었다.
어린 왕자는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덧붙여 말했다.
"나도 오늘 우리집에 돌아가……."
그리고 쓸쓸하게,
"그건 훨씬 더 멀고…… 더 어려워……."
나는 무슨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를 어린애 모양으로 꼭 껴안았다. 그러나 나는 걷잡을 새도 없이 그애가 끝없는 구멍으로 곧장 빠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의 눈길은 말가니 먼 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가 준 양이 있어. 그리고 양을 넣어 두는 상자하고 굴레도 있고……."
그는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얘야, 너 무서웠지?"
물론 무서웠지! 그러나 그는 상냥하게 웃으며,
"오늘 저녁이 훨씬 더 무서울 거야."
하고 대답했다.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다시 등골이 싸늘해졌다. 그리고 다시는 이 웃음소리를 영영 듣지 못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견딜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 웃음은 내게 잇어서는 사막에 있는 샘과 같은 것이었다.
"얘야, 네 웃음소리가 더 듣고 싶구나."
그러나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오늘밤이면 1년이 돼. 내 별이 내가 작년에 떨어졌던 자리 바로 위에 와 있게 돼……."
"얘야, 그 뱀 이야기, 뱀하고 만나는 이야기, 별 이야기는 모두 못된 꿈이지……."
그러나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중요한 건 눈에 뵈지 않는 거야……."
"그렇고 말고……."
"꽃도 마찬가지야, 만약 어떤 별에 있는 꽃을 좋아하게 되면 밤에 하늘을 쳐다보는 게 참 아늑해. 어느 별에는 다 꽃은 피어 있어."
"그렇고 말고."
"물도 마찬가지야. 아저씨가 내게 마시게 한 물은 음악 같았어. 도르래하고 밧줄 때문에 말야……. 아저씨, 생각나지…… 물이 참 맛있었지……."
"그렇고 말고"
"아저씨, 밤이 되면 별들을 쳐다 봐.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 있는지 아저씨한테 보여 줄 수가 없어. 그게 더 나아. 내 별이 아저씨에게는 여러 별 중의 하나가 될 거야……. 그러면 아저씨는 어느 별이든지 모두 쳐다보고 싶어질 거야……. 그 별들이 모두 아저씨와 친해질 거고. 그리고 나 아저씨한테 선물을 한 줄테야……."
그러면서 또 웃었다.
"얘야, 얘야! 나는 네 웃음소리가 좋다!"
"바로 이게 선물로 주는 거야……. 이건 물도 마찬가지야……."
"그게 무슨 말이니?"
"사람에 따라 별들도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어.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들이 길잡이가 되는 거야. 또 별들을 조그만 빛으로밖에 보지 않는 사람도 있고,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별들이 수수께끼가 되는 거고. 내가 말한 실업가는 별이 모두 금으로 보이지만 그 별을은 모두 말이 없어. 그런데 아저씨는 별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모양으로 보지 않게 된 거야……."
"그게 무슨 소리니?""
"내가 별들 중의 하나에서 살고 있을 테니까, 내가 그 별들 중의 하나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쳐다보게 되면 별들이 모두 웃는 것으로 보일 거야. 그러니까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가지게 된 거야!"
그러면서 또 웃었다.
"그리고 아저씨의 설움이 가신 다음에는 ― 사람은 언제나 설움이 가시는 거니까 ― , 나를 안 것을 기쁘게 생각할 거야. 아저씨는 언제까지나 나하고 친구로 있을 거고, 나하고 웃고 싶어질거야. 그리고 그저 괜히 창문을 열 때가 있겠지……. 아저씨가 하늘을 쳐다보며 웃는 걸 보고 친구들이 아주 이상히 여길 거야. 그러면 아저씨는 이렇게 말할 거야. '응, 별들을 보면 난 언제든지 웃음이 나네!' 그러면 친구들은 아저씨를 미친 걸로 알 거야. 난 그럼 아저씨한테 아주 못할 일을 한 게 되겠는데……."
그러면서 어린 왕자는 또 웃었다.
"그건 별 말고 웃을 줄 아는 조그마한 종을 잔뜩 아저씨한테 준 것 같을 거야……."
그리고 또 한 번 웃더니, 이번에는 웃음 걷힌 얼굴로 말했다.
"이거 봐, 아저씨…… 오늘밤엔 오지마."
"난 네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다."
"나는 아픈 것같이 보일 거야……. 조금은 죽은 것같이 보일 거야. 그럴 거야. 그걸 보러 오지는 마. 올 필요 없어……."
"난 네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다."
그러나 그는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아저씨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건…… 뱀 때문이기도 해. 뱀한테 아저씨가 물리면 어떻게 해. 뱀들은 사나워. 괜히 무는 수도 있어……."
"난 네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어린 왕자는 어떤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두 번재 물 적에는 독이 없긴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그가 길을 떠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소리 없이 슬그머니 빠져 나간 것이었다. 내가 그를 따라갓을 적에, 그는 서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는데 나를 보고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아! 아저씨 왔어?" http://www.gospelian.com/le_petit_prince/images/40.gif
그러면서 내 손을 잡았다. 그러나 다시 애를 썼다.
"아저씨가 온 건 잘못이야. 걱정을 하게 될 테니 말이야. 난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이거 봐, 아저씨. 거긴 너무 먼 데야. 나는 몸뚱이를 가지고 갈 수가 없어. 너무 무거워."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내 버린 묵은 허물 같을 거야. 묵은 허물 그건 슬프지 않아……."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는 좀 기가 죽었다. 그러나 다시 힘을 냈다.
"이거 봐, 아저씨. 그건 아늑할 거야. 나도 별들을 쳐다볼 테야. 모든 별들이 녹슨 도르래 달린 우물이 될 거야. 모든 별들이 내게 물을 마시게 해 줄 거야……."
나는 잠자코 있었다.
"참 재미있을 거야. 아저씨는 종이 5억 개 있을 거고, 나는 샘이 5억 개 있을 거고……."
그리고 그는 입을 아물었다. 울고 있었던 것이다.
"다 왔어. 나 혼자 한 걸음 내딛게 가만 둬."
그러고는 앉았다. 겁이 났던 것이다.
또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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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봐, 어저씨……. 내 꽃 말이야……. 그건 내게 책임이 있어! 그런데 그 꽃은 봅시도 약해! 또 몹시 순진하고. 오죽잖은 가시 네 개만을 가지고 외세에 대해서 제 몸을 보호하려고 해."
나는 더 서 있을 수가 없어서 앉았다. 그는 계속 말했다.
"자…… 이뿐이야."
그는 또 잠깐 망설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한 걸음 내디뎠다. 나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발목께서 노란 빛이 반짝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잠시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그는 나무가 넘어지듯 조용히 쓰러졌다. 모래 때문에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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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래,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벌써 여섯 해나 되었는데…… 나는 아직 이 이야기를 한 일이 없다. 나를 다시 본 동료들은 내가 살아 돌아온 것을 무척 기뻐들 했다. 나는 슬폈지만 그들에네는 '고단해서' 라고만 말했다.
지금은 그 설움이 좀 가시었다. 그러니까…… 아주 가시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애가 제 별로 돌아간 것을 나는 잘 안다. 해 뜰무렵에 보니 그의 몸은 사라졌으니까. 그리 무거운 몸뚱이는 아니었다. 그리해서 나는 밤에 별들의 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그것은 5억 개의 종과 같은 것이니까.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겼다.
나는 어린 왕자에게 그려 준 굴레에다가 잊어 버리고 가죽끈을 달아 주지 않았다. 그 애는 그 굴레를 양에게 영 씌우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나는,
'그 애 별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양이 꽃을 먹어 버렸는지 모를 일이야.'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도 한다.
'그럴 리가 없지! 어린 왕자는 밤마다 꽃에 유리 덮개를 씌우고 양을 잘 지키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별들은 모두 고요히 웃는다.
어떤 때는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언제고 한 번쯤 잊어 버릴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만이다. 어느 날 저녁 그 애가 유리 덮개 씌우기를 잊었다든지, 양이 밤중에 소리 없이 나간다든지 했다면…….'
그러면 종들이 모두 눈물로 변해 버릴 것이다.
이것은 커다란 수수께끼다. 역시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나 내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양이 어디선가 장미꽃을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에 따라서 천지가 온통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쳐다보고 이렇게 생각하라.
'양이 꽃을 먹었나, 안 먹었나?'
그러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것이 중요한 것임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내게 있어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쓸쓸한 풍경이다. 이것은 앞 장의 것과 같은 풍경이지만, 여러분에게 똑똑히 보여 주려고 다시 한 번 그린 것이다. 어린 왕자가 땅 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곳이 바로 여기다. 이 풍경을 똑똑히 보아 두었다가, 언제고 여러분이 아프리카의 사막을 여행하게 되면, 이와 꼭 같은 풍경을 틀림없이 알아 볼 수 있도록 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가게 되거든, 제발 걸음을 빨리 하지 말고 별 아래서 잠시 기다려라! 그때 만약 어떤 아이가 여러분에게로 웃으며 왔는데, 그 애의 머리가 금발이고, 말을 물어도 대답이 없나면, 여러분은 그 애가 누군지 알아내리라.
그렇게 된다면 내게 친절을 베풀어 달라! 내가 이렇게도 슬퍼하는 것을 그냥 내 버려 두지 말고 그 애가 돌아왔다고 이내 편지를 보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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